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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와 행인 - 한용운

게시자: 성우넷, 2018. 7. 21. 오후 12:21   [ 2018. 7. 21. 오후 12:21에 업데이트됨 ]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립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 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 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사진 저작권 bahanphoto

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게시자: 성우넷, 2018. 7. 21. 오후 12:08   [ 2018. 7. 21. 오후 12:09에 업데이트됨 ]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사진 저작권 DC P

알 수 없어요 - 한용운

게시자: 성우넷, 2018. 7. 21. 오전 11:44   [ 2018. 7. 21. 오전 11:44에 업데이트됨 ]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垂直)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塔)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은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뿌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구비구비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사진 저작권 michaelinvan

어져 내 일이야 외 5수 - 황진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25   [ 2018. 7. 17. 오후 3:25에 업데이트됨 ]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굽이굽이 펴리라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晝夜)에 흐르거든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人傑)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은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松都(송도)

雪中前朝色 (설중전조색) 눈 가운데 옛 고려의 빛 떠돌고 
寒鐘故國聲 (한종고국성) 차디찬 종소리는 옛 나라의 소리 같네 
南樓愁獨立 (남루수독립) 남루에 올라 수심 겨워 홀로 섰노라니 
殘廓暮烟香 (잔곽모연향) 남은 성터에 저녁연기 피어 오르네


무술서행록(戊戌西行錄) - 허균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24   [ 2018. 7. 17. 오후 3:24에 업데이트됨 ]



시부 1   ○ 무술서행록(戊戌西行錄) 

 
 
포은(圃隱)의 구택(舊宅)을 지나면서 노래하다 
 

포은이라 정 선생은 고려 말엽 그 시절에 / 圃隱先生在麗末
충절이 늠름하다 어느 뉘 빼앗으리 / 忠節凜然不可奪
어찌 이학만을 전하였을까보냐 / 豈惟理學傳不傳
조정에 임 계실 땐 나라도 살았거든 / 公在巖廊國幾活
송악산의 왕기는 오백 년에 끝이 나고 / 神嵩王氣五百終
몽금척(夢金尺)은 하룻밤에 수강궁으로 내려갔네 / 金尺夜下壽康宮
우리님 은띠 띠고 태연자약 그 자세로 / 公也垂紳不動色
호랑이가 깊은 숲에 도사린 듯 앉아 있네 / 隱若虎豹蹲深叢
선죽교라 다리 위 뿌려진 한 줄기 피 / 善竹橋頭一腔血
이름은 우뚝 솟아 서산과 나란하이 / 名與西山並崷崒
성읍이 남으로 옮겨 조시는 비었지만 / 城邑南遷朝市空
옛 사당의 향화는 상기도 끊임없네 / 遺祠香火猶芬苾
나는 사내 형을 따라 집터를 찾아보니 / 我從四耐尋宅基
무너진 담장이라 풀 덩굴만 엉기었네 / 頹垣野蔓生離離
멧 바람 우수우수 지는 해 가물가물 / 山風蕭蕭落日黑
저문 연기 숲을 덮고 새는 슬피 우네그려 / 暝煙冪樹啼禽悲
옛일이 서글퍼라 내 눈물을 닦노니 / 悄然愴古抆我淚
어진이엔 복 주는 법 하느님이 취했겠다 / 仁者必祿天何醉
남아의 한 번 죽음 어느 뉜들 도피하리 / 男兒一死固難逃
차라리 죽을진대 충의에 바치련다 / 寧欲將身徇忠義
그대는 못 보았나 삼군이 정부 안에 무기를 벌여놓고 / 君不見三軍府裏羅劍鋩
적사(嫡嗣)를 바꿔치어 강상(綱常)을 거역한 일 / 忘君易嫡違天常
결구(結構)가 갓 끝나자 사회는 죽고 마니 / 締構纔畢謝晦死
중교에 폭사한 건 사람 재앙 아니로세 / 中橋暴死非人殃


손곡(蓀谷)은 말하기를 “삼봉(三峯)이 혼이 있다면 마땅히 혀를 내두르며 자기의 죄를 수긍할 것이다.” 하였다.

[주D-001]사회(謝晦) : 남조(南朝) 시대 송(宋) 나라 사람. 소제(少帝)가 즉위한 뒤 중서령(中書令)으로서 서연지(徐羨之) 등과 국정(國政)을 보좌하다가 이윽고 폐립(廢立)하는 계책을 세웠는데, 문제(文帝)가 즉위하여 서연지 등을 베므로 그도 하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반기를 들었으나 마침내 패하여 복주(伏誅)되었다.


한국고전번역원 / 성소부부고 제1권  사진 view

긍정적인 밥 - 함민복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22   [ 2018. 7. 17. 오후 3:22에 업데이트됨 ]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스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 한 권이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 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파랑새 - 한하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21   [ 2018. 7. 17. 오후 3:21에 업데이트됨 ]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사진 John&Fish

임의 침묵 - 한용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19   [ 2018. 7. 17. 오후 3:19에 업데이트됨 ]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임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임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임은 갔지마는 나는 임을 보내지 아니하얐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임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사진 view

향수 - 정지용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17   [ 2018. 7. 17. 오후 3:17에 업데이트됨 ]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어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사진 cyclops1999

유리창 - 정지용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3:15   [ 2018. 7. 17. 오후 3:15에 업데이트됨 ]



유리(琉璃)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치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肺血管)이 찢어진 채로
아아, 너는 산(山)새처럼 날아 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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