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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




어느 박애주의자인 신문 기자가 고독은 인간에 해롭다고 나에게 말한다. 그리고 자기의 논지를 뒷받침 하기 위하여, 모든 무신론자들이 그러하듯이, 교회의 [신부들] 말을 인용한다.

[악마]는 즐겨 쓸쓸한 곳을 넘나드는 것이며, 살인과 간음의 [정령]은 고독 속에서 희한하게 타오른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고독이 위험한 것은 오직 정열과 망상으로 고독을 가득 채우는 한가하고 들뜬 넋에 한한다 할 것이다.
확실히, 높다란 연단이나 강단 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다시 없는 즐거움으로 여기는 수다장이가 만약에 로빈슨의 무인도에 있다면은 무서운 마치광이가 될 염려가 다분히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신문 기자에게 크루소의 용감한 미덕을 요구하지는 않으나, 그가 고독과 신비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비난의 말은 던지지 말아 주기 바란다.
우리나라의 수다스러운 족속들 중에는, 단두대 위에서 장황한 연설을 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도중에 상떼르 장군의 북에 의해 불시에 중단당할 염려만 없다면, 극형도 그다지 싫어하지 않고 받을 만한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그들은 그러한 장광설의 토로 소에서, 남들이 침묵과 명상에서 끌어 내는 것과 똑 같은 쾌락을 얻는다는 걸 나는 짐작하기 때문에. 다만 나는 그들을 멸시할 따름이다.
내가 무엇보다도 비라는 것은, 이 신문 기자 망나니가 나로 하여금 내 멋대로 즐길 수 있게 내버려 달라는 것이다. [그럼 당신은 당신 즐거움을 남과 나누고 싶은 욕망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게군요?] 하고 그는 아주 사도(使徒)다운 얼굴 표정을 하고 나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이 약삭빠른 사기꾼을! 내가 제 즐거움을 멸시하는 것을 알고, 요번에는 내 즐거움 속에 슬며시 기어 들어오는 것이다. 이 끔찍하게도 싱거운 작자는!
[혼자 있을 수 없는 커다란 불행!······] 라 브뤼예르는 어디선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분명히 자기 자신에 견디어 내지 못함을 두려워하는 남지, 군중 속에 자기ㅡㄹ 잊으려고 달려가는 작자들을 비난하려고 한 말인 것 같다.
[우리들의 불행은 거개가 자기의 방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한 데서 생긴다] 라고 또 하나의 현인(賢人) 빠스칼은 말하였다. 생각컨대 빠스칼은 그 때 명상의 독방 속에서 그렇게 말하면서, 감히 현대의 멋진 말로 말하자면 우애적(友愛 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매음과 법석 속에 행복을 찾고 있는 저 모든 미치광이들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림, <고독> 마르크 샤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