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 ‎중남미‎ > ‎칠레‎ > ‎

망각은 없다(소나타) - 파블로 네루다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후 1:23   [ 2018. 7. 18. 오후 1:23에 업데이트됨 ]


나더러 어디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돌들로 어두워진 땅이라든가
살아 있느라고 망가진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이어지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찌하여 죽은 사람들이?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얘기부터 할밖에.
참 쓰라림도 많은 가구들,
흔히 썩어버린 큰 가축들,
그리고 내 괴로운 마음 얘기부터.

서로 엇갈린 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게 기억이다:
이미 지나간 날의 어둠,
우리의 슬픈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여기 제비꽃들, 제비들이 있다,
마음에 쏙 들고
시간과 달가움이 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엽서에 등장하는 것들.

하지만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이 쌓이는 껍질을 물어뜯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갈라놓곤 했던 바다 제방이 참 많고,
배들이 부딪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엉키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사진 Edge of Spa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