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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홀로 내 슬픔 다스리고 -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후 4:21   [ 2018. 7. 18. 오후 4:21에 업데이트됨 ]




홀로 나는 내 슬픔을 다스리고,
홀로 나는 버림받은 5월을 정복하고,
고요한 시절의 들판에,
홀로 나는 향기를 가득 내뿜고

칼에 찔린 상처는 아픔의 외침보다 깊지 않겠고
불의는 피보다 경건하지 못하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홀로 평원에 남고
폭풍을 맞아 홀로 잡혀 성으로 끌려가니
부르짖던 말을 나는 홀로 간직하도다


사진 Tall Guy

가장 불명예스러운 일 - 소크라테스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후 4:19   [ 2018. 7. 18. 오후 4:19에 업데이트됨 ]




   무절제와 질병이 만연하면 법정과 병원이 번창하게 될 걸세. 의사나 법률가가 판을 치는 세상이 오겠지. 노예나 천민뿐만 아니라 교양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까지 의사나 법률가에 의지하게 된다는 것은 결코 명예로운 일이 아니네. 그러한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겨야 한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교육이 실패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네.
   더 불명예스러운 일도 있네. 성정이 고약해서 부정에 능한 자들 말이네. 그런 자들은 툭하면 법정에 의지해 죄를 면하려고 하지. 자신의 생활 태도를 반성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면 법망을 빠져나갈까만 궁리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악취미를 갖고 있지. 
   특별한 외상이나 유행병 때문이라면 모르지만 생활 습성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의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그 역시도 명예스럽지 못한 일이네. 사실 국가라는 체제 속에서는 그런 일 때문에 병을 앓고 있을 시간적 여유가 없네. 자신의 생업에 충실하다면 말이네. 그러나 이러한 법칙도 부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네. 그에겐 특별히 해야 할 일이라곤 없을 테니까.
   요지는 이거네. 덕의 추구는 돈 많은 사람들에 의해 행해져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네. 그런데 대부분의 부자들에게 있어 현실은 정반대네. 그들은 하는 일이라곤 없이 자신의 건강을 염려해 늘 전전긍긍하지.


플라톤의 <국가론> 중, 이환 편역
이미지 
Thomas Leut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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