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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정의(定義) - 폴 엘뤼아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21   [ 2018. 7. 18. 오전 12:22에 업데이트됨 ]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고
숯으로 불을 피우고
키스로 인간을 만드는 것
이것이 인간의 뜨거운 법칙이다

전쟁의 비참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본연의 자태를 그대로 간직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가혹한 법칙이다

물을 빛으로
꿈을 현실로
적을 형제로 변하게 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부드러운 법칙이다

어린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최고 이성에 이르기까지
계속 자체를 완성시켜가는
낡고도 새로운 법칙이다 

그림, <정의> 밀레

자유 - 폴 엘뤼아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20   [ 2018. 7. 18. 오전 12:20에 업데이트됨 ]




초등학교 때의 나의 노트에  
나의 책상 위에 그리고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그리고 공백으로 된 모든 책장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까지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금빛 칠한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무기 위에 
그리고 왕들의 관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들 둥지마다 그리고 금잔화나무마다 
내 어린 계절의 메아리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신비스런 밤에도 
일용의 양식인 흰 빵 위에도 
그리고 약속했던 계절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푸른 빛의 내 모든 누더기 옷에도 
햇빛에 이끼 이룬 연못 위에도 
생생히 달빛 비친 호수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들판 위에도 지평선에도 
새들의 날갯죽지에도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먼동이 트는 새벽녘의 입김에도 
바다 위에도 선박 위에도 
미친듯이 분화하는 산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에도 
솟아나는 땀과 같은 소나기에도 
김빠진 굵다란 빗방울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빛나는 모든 것 위에도 
가지각색의 종들마다 
그리고 물리적인 진리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살며시 눈을 뜬듯 꼬부라진 오솔길 위에도 
훤히 뻗어나간 큰 길 위에도 
넘쳐 흐르는 광장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불이 켜지는 호야 램프에도 
불이 꺼지는 호야 램프에도 
일당에 모여 앉은 내집 식구들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두 쪽으로 쪼개진 과실 위에도 
빈 조개껍질 같은 내 침상 위에도 
내 방과 채경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아직 나이 어려 지범대는 내 집 강아지에게도 
빳빳하게 선 그의 양쪽 귀 위에도 
아직 익숙치 않은 그의 정강이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우리 대문간에 놓여진 발판 위에도 
정든 가지가지의 물건 위에도 
축복받은 듯 파도처럼 이는 불길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조화로운 모든 육체에게도 
내 벗들의 이마 위에도 
악수를 청하는 모든 손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놀란 듯한 창문 위에도 
기다리는 입술 위에도 
그리고 침묵을 아득히 넘어서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파괴된 내 피난살이 집 위에  
무너진 내 등대들 위에 
내게 권태를 알려주는 이 벽돌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욕정없는 이 곧은 마음씨에게도  
이 벌거숭이 같은 고독에게도 
이 죽음의 행진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건강한 몸에게 
이미 사라져 버린 위태함에도 
과거 없는 새로운 희망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나는 어휘의 힘으로써 
나의 인생을 다시 마련한다. 
나는 지금 태어났다. 그대를 알기 위하여 
그리고 그대를 이름짓기 위하여

오, 자유여! 


그림 zzilzzily

사랑의 힘에 대하여 - 폴 엘뤼아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18   [ 2018. 7. 18. 오전 12:18에 업데이트됨 ]




모든 괴로움 사이 죽음과 나 사이에
나의 절망과 삶의 이유 사이에
용서할 수 없는 부정과 인류의 불행이 있고
나의 분노가 있다.

스페인 핏빛 마끼단이 있고
그리스의 하늘빛 마끼단이 있다
악을 미워하는 모든 선의의 사람들을 위해
빵과 피와 하늘과 희망에의 권리가 있다.

빛은 언제나 꺼져들 듯하며
인생은 언제나 보잘것없는 것이 되어버리더라도
봄은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법이고
새싹은 어둠 속에서 돋아나고 열기는 뿌리내리는 법

열기는 이기주의자들을 격파할 것이고
그들의 감각은 위축되어 저항하지 못할 것이고
미지근한 것을 비웃는 불의 소리 들려오고
괴롭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소리 들려오리니

내 육체의 민감한 의식이었던 너
영원히 사랑하는 너 나를 만들었던 너
너는 억압과 불의를 참지 않았고
지상의 행복을 꿈꾸며 노래해 왔으니
 
자유를 꿈꾸었던 너의 모습을 나 이제 이어받으련다.



* 마끼단 :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 점령하의 프랑스에서 항독운동을 계속한 단체


오생근 옮김
사진 
Mémorial de la France Combattante

하얀 달 - 폴 베를렌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16   [ 2018. 7. 18. 오전 12:16에 업데이트됨 ]




하얀 달이 
빛나는 숲속에서
가지마다
우거진 잎사귀 사이로
흐르는 목소리

오, 사랑하는 사람아

깊은 겨울 
연못에 드리운
버드나무의
검은 그림자는
바람에 흐느끼네

아, 지금은 꿈꾸는 때

별들이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는 하늘에서
크고 포근한
고요가 내려오는 듯

아득한 이 시간


사진 DΕΠΠΙS

애가(哀歌) - 프랑시스 잠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12   [ 2018. 7. 18. 오전 12:14에 업데이트됨 ]




'내 사랑이여' 하고 당신이 말하면
'내 사랑이여' 라고 나는 대답했네
'눈이 내리네' 하고 당신이 말하면
'눈이 내리네' 라고 나는 대답했네

'아직도' 하고 당신이 말하면
'아직도' 라고 나는 대답했네
'이렇게' 하고 당신이 말하면
'이렇게' 라고 나는 대답했네

그 후 당신은 말했지 '사랑해요'
나는 대답했네 '나는 당신보다 더'라고
'이젠 여름도 가는군' 당신이 내게 말하자
'이젠 가을이군요'라고 나는 대답했네
그리고는 우리들의 말도 달라졌네
어느 날 마침내 당신은 말하기를
'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데'
그래서 나는 대답했네
'또 한 번 말해봐요 또 한 번'
(어느 가을 노을이 눈부신 저녁이었지) 


곽광수 옮김
사진 
Michelle Brea

바닷가에서 - 테오필 고티에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09   [ 2018. 7. 18. 오전 12:09에 업데이트됨 ]



달은 높은 하늘에서

손에 들었던 금부채를
바다의 그 새파란 
융단 위에 떨어뜨렸네

주워 올리려 엎드린 채
은빛 팔을 펴지만 
그 흰 손아귀를 빠져나와
부채는 물결 따라 흘러가네

천 길 물속에 이 몸을 던져 
부채를 돌려주랴, 빛나는 달이여 
그대 하늘에서 내려온다면 
나는 하늘로 올라가리라
 


당신의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 - 장 자크 루소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11:58   [ 2018. 7. 17. 오후 11:58에 업데이트됨 ]




   당신의 아이를 불행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갖게 하라.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갖게 하라. 욕망은 날로 증대될 것이고 그에 따라 당신의 능력은 고갈될 것이다. 언젠가 당신은 아이의 요구를 거절해야만 할 시기가 올 것이고 그러면 아이는 미칠 것이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고통보다 익숙하지 않은 당신의 그 거절 때문에 아이는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었던 아이는 그 거절을 배신으로 여길 것이다. 아이는 이치를 따질 줄 모르므로 당신의 어떠한 설명도 변명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는 사방에서 악의를 볼 것이고, 이는 아이의 본성을 비뚤어지게 해 모든 사람들을 미워하게 할 것이다. 오만한 폭군이 되어 날뛸 것이다.


<에밀> 中, 이환 편역
사진 horizontal.integration

절망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 자크 프레베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11:55   [ 2018. 7. 17. 오후 11:56에 업데이트됨 ]




광장의 벤치 위에
어떤 사람이 앉아
사람이 지나가면 부른다
그는 외알안경에 낡은 회색옷
엽궐련을 피우며 앉아 있다
그를 보면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그가 보이지도 않는 양
그냥 지나쳐야 한다
그가 보이거든
그의 말이 들리거든
걸음을 재촉하여 지나쳐야 한다
혹 그가 신호라도 한다면
당신은 그의 곁에 가 앉을 수밖에
그러면 그는 당신을 보고 미소 짓고
당신은 참혹한 고통을 받고
그 사람은 계속 웃기만 하고
당신도 똑같이 웃게 되고
웃을수록 당신의 고통은
더욱 참혹하고
고통이 더할수록
더욱 어쩔 수 없이 웃게 되고
당신은 거기
벤치 위에
미소 지으며
꼼짝 못하고 앉는다
곁에는 아이들이 놀고
행인들
조용히 지나가고
새들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가고
당신은 벤치 위에
가만히 앉아 있다
당신은 안다 당신은 안다
이제 다시는 이 아이들처럼
놀 수 없음을
이제 다시는 조용히
이 행인들처럼 지나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이 새들처럼
이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날아갈 수 없음을
당신은 안다.


김화영 옮김
사진 
sara biljana

자유 지역 - 자크 프레베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11:54   [ 2018. 7. 17. 오후 11:54에 업데이트됨 ]




군모를 새장에 벗어 담고
새를 머리 위에 올려놓고
외출했더니
그래 이젠 경례도 안 하긴가? 하고
지휘관이 물었다.
아뇨 
경례는 이제 안 합니다 하고
새가 대답했다.
아 그래요? 
미안합니다 경례를 하는 건 줄 알았는데
하고 지휘관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 법이지요 하고
새가 말했다.


김화영 옮김
이미지 jesuscm

이 사랑 - 자크 프레베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11:53   [ 2018. 7. 17. 오후 11:53에 업데이트됨 ]



이 사랑은 
이토록 사납고
이토록 연약하고
이토록 부드럽고
이토록 절망한
이 사랑은 
대낮같이 아름답고 
날씨처럼 나쁜 사랑은
날씨가 나쁠 때
이토록 진실한 이 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은
이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또 이토록 덧없어
어둠 속 어린애처럼 두려움에 떨지만
한밤에도 태연한 어른처럼 자신 있는 
이 사랑은 
다른 이들을 겁나게 하던
그들의 입을 열게 하던
그들을 질리게 하던 이 사랑은
우리가 그네들을 못 지키고 있었기에 
염탐 당한 이 사랑은
우리가 그를 추격하고 해(害)하고 짓밟고 죽이고
부정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쫓기고 상처받고 짓밟히고 살해되고
부정되고 잊힌 이 사랑은
아직 이토록 생생하고
이토록 볕에 쪼인
송두리째 이 사랑은 
이것은 너의 것
이것은 나의 것
언제나 언제나 새로웠던 그것
한 번도 변함없던 사랑
초목같이 진정하고
새처럼 애처롭고 
여름처럼 따뜻하고 생명에 차
우리는 둘이 다 
가고 올 수 있으며
우리는 잊을 수 있고
우리는 다시 잠들 수 있고
잠 깨고 고통 받고 늙을 수 있고
다시 잠들고
죽음을 꿈꾸고
정신 들고 미소 짓고 웃음 터뜨리고 
다시 젊어질 수 있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여기 고스란히
멍텅구리처럼 고집 세고
욕망처럼 피 끓고
기억처럼 잔인하고
회한처럼 어리석고
대리석처럼 차디차고
대낮처럼 아름답고
어린애처럼 연약하여
웃음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도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몸을 떨며 귀를 기울인다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외친다
나를 위해 외친다
네게 애원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서로 사랑하는 모두를 위해
서로 사랑하였던 모두를 위해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모르는 다른 모두를 위해
거기 있거라 
지금 있는 거기 있거라
옛날에 있던 그 자리에
거기 있거라
움직이지 마라
떠나버리지 마라
사랑받은 우리는 
너를 잊어버렸지만
너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우리에겐 땅위에 오직 너뿐
우리들 차디차게 변하도록 버리지 마라
항상 더욱더 먼 곳에서도
그리고 그 어디에서든 
우리에게 생명의 기별을 다오
훨씬 더 훗날 어느 숲 기슭에서 
기억의 숲속에서
문득 솟아나거라
우리에게 손 내밀고
우리를 구원하여라.


김화영 옮김
사진 
dontshoot.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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