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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 폴 엘뤼아르

게시자: 성우넷, 2018. 7. 18. 오전 12:20   [ 2018. 7. 18. 오전 12:20에 업데이트됨 ]



초등학교 때의 나의 노트에  
나의 책상 위에 그리고 나무들 위에 
모래 위에 눈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내가 읽은 모든 책장 위에 
그리고 공백으로 된 모든 책장 위에 
돌과 피와 종이와 재 위에까지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금빛 칠한 조상(彫像) 위에 
병사들의 무기 위에 
그리고 왕들의 관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밀림에도 사막에도  
새들 둥지마다 그리고 금잔화나무마다 
내 어린 계절의 메아리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신비스런 밤에도 
일용의 양식인 흰 빵 위에도 
그리고 약속했던 계절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푸른 빛의 내 모든 누더기 옷에도 
햇빛에 이끼 이룬 연못 위에도 
생생히 달빛 비친 호수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들판 위에도 지평선에도 
새들의 날갯죽지에도 
그리고 그늘진 풍차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먼동이 트는 새벽녘의 입김에도 
바다 위에도 선박 위에도 
미친듯이 분화하는 산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에도 
솟아나는 땀과 같은 소나기에도 
김빠진 굵다란 빗방울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빛나는 모든 것 위에도 
가지각색의 종들마다 
그리고 물리적인 진리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살며시 눈을 뜬듯 꼬부라진 오솔길 위에도 
훤히 뻗어나간 큰 길 위에도 
넘쳐 흐르는 광장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불이 켜지는 호야 램프에도 
불이 꺼지는 호야 램프에도 
일당에 모여 앉은 내집 식구들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두 쪽으로 쪼개진 과실 위에도 
빈 조개껍질 같은 내 침상 위에도 
내 방과 채경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아직 나이 어려 지범대는 내 집 강아지에게도 
빳빳하게 선 그의 양쪽 귀 위에도 
아직 익숙치 않은 그의 정강이에게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우리 대문간에 놓여진 발판 위에도 
정든 가지가지의 물건 위에도 
축복받은 듯 파도처럼 이는 불길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조화로운 모든 육체에게도 
내 벗들의 이마 위에도 
악수를 청하는 모든 손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놀란 듯한 창문 위에도 
기다리는 입술 위에도 
그리고 침묵을 아득히 넘어서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파괴된 내 피난살이 집 위에  
무너진 내 등대들 위에 
내게 권태를 알려주는 이 벽돌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욕정없는 이 곧은 마음씨에게도  
이 벌거숭이 같은 고독에게도 
이 죽음의 행진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건강한 몸에게 
이미 사라져 버린 위태함에도 
과거 없는 새로운 희망 위에도 
나는 쓴다 그대 이름을.

나는 어휘의 힘으로써 
나의 인생을 다시 마련한다. 
나는 지금 태어났다. 그대를 알기 위하여 
그리고 그대를 이름짓기 위하여

오, 자유여! 


그림 zzilzzi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