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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밤 - 알프레드 드 뮈세

게시자: 성우넷, 2018. 7. 17. 오후 11:01   [ 2018. 7. 17. 오후 11:01에 업데이트됨 ]



뮤즈

시인이여, 비파를 들고 내게 입 맞춰주세요.
들장미꽃은 봉오리가 피어남을 느낀답니다.
오늘 밤 봄이 시작되고 바람이 뜨거워지면,
여명을 고대하는 할미새는
초록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수풀에 머무르기 시작합니다.
시인이여, 비파를 들고 내게 입 맞춰주세요.

시인

골짜기 안은 어찌나 어두운지!
베일에 싸인 한 형체가
저 숲 위에서 떠도는 것 같구나.
그 형체는 초원에서 나와
그 밤이 꽃 핀 풀을 짓밟아버렸다.
이상한 몽상.
형체는 희미하게 사라져버렸소.

뮤즈

시인이여, 비파를 드세요. 밤의 향기로운 베일 속에서
잔디 위로 서풍이 산들거립니다.
아직 순결한 장미는, 죽어가며 장미에 도취한
진줏빛 말벌을 질투하여 다시 꽃잎을 오므려버렸습니다.
들어보세요! 모두가 입을 다물었습니다. 당신의 연인을 생각해보세요.
오늘 밤 보리수 아래로 저무는 햇빛은
우거진 가지에 더욱 감미로운 작별의 말을 남길 것입니다.
오늘 밤 모든 것이 꽃을 피우려 합니다. 불멸의 자연은
기쁨에 싸인 젊은 부부의 침대처럼
향기와 사랑과 속삭임으로 가득 넘칩니다.

시인

심장은 왜 이리 빨리 뛴단 말인가?
동요하는 무엇이 내 안에 남아 있단 말인가?
나는 그것이 두렵다네.
누군가 나의 방문을 두드리지 않는가?
반쯤 꺼진 나의 램프는 왜
그 빛으로 나를 눈부시게 하는가?
전지전능한 신이시여! 온몸이 떨린다.
누가 오는가? 누가 나를 부르는가? ― 아무도 없구나.
나는 혼자라네. 종이 울릴 시간이다. 
아, 고독이여! 아, 초라함이여!

뮤즈

시인이여, 비파를 드세요. 오늘 밤 신의 혈관 속에서
젊음의 포도주가 익습니다.
내 가슴은 불안합니다. 쾌락에 내 가슴은 숨이 막히고
목마른 바람은 내 입술을 불타오르게 합니다.
아, 게으른 아이여! 보세요, 나는 아름답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첫 키스를 기억하지 못하나요.
내 날개가 스치자 그렇게도 창백해진 당신을 보았을 때,
두 눈은 눈물에 젖어 내 품에 안기지 않았던가요?
아! 쓰라린 고통에서 나는 당신을 위로해주었습니다!
아! 여전히 젊은 당신은 사랑으로 인해 죽으려 했으니.
오늘 밤 나를 위로해주세요, 나는 희망으로 인해 죽어가니
날이 밝을 때까지 살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시인 

나를 부른 게 당신의 목소리였소?
오, 나의 가련한 여신이여! 당신이었소?
오, 나의 꽃이여! 오, 나의 불멸의 연인이여!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 
정숙하고 믿음직한 유일한 존재여!
그래, 거기 있구나. 그대 나의 금발이여,
그대, 나의 연인 나의 누이여!
깊은 밤 나는
나를 휘감고 있는 당신의 황금빛 옷자락에서
내 심장으로 스며드는 빛을 느낀다오.

뮤즈

시인이여, 비파를 드세요. 불멸의 연인인 바로 내가
오늘 밤 말없이 슬픔에 잠긴 당신을 보고,
어린 새끼들의 부름에 달려온 어미 새처럼
당신과 함께 울기 위해서 높은 하늘 위에서 내려왔으니.
오세요, 친구여, 당신은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쓸쓸한 불안이
당신을 괴롭히고, 당신의 심장 속에서 무언가가 신음하고 있군요.
지상에서 흔히 보듯, 어렴풋한 기쁨, 허울뿐인 행복인
어던 사랑이 당신에게 찾아왔습니다.
오세요, 신 앞에서 노래합시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잃어버린 환희 속에서, 지나간 고통 속에서 노래합시다.
입맞춤을 한 채로 미지의 세계로 떠납시다.
닥치는 대로 당신의 생명의 메아리를 일깨웁시다. 
설사 그것이 꿈이라도, 하찮은 것이라도,
행복과 영광과 사랑의 정열을 이야기합시다.
어딘가 망각의 장소를 만들어냅시다.
떠납시다, 우리는 단둘이고, 세상은 우리 것이니.
푸른 스코틀랜드와 갈색의 이탈리아,
감미로운 꿀의 나라 나의 어머니 그리스와,
아르고스와 대학살의 도시 프텔레온과,
비둘기들의 안식처, 신성한 메사와,
색색의 나무가 우거진 펠리온 산꼭대기와,
푸른 티타레스와, 백조가 떠다니는 물 위로
하얀 올로손과 하얀 카미르가 비치는
은빛의 만(灣)이 여기 있습니다.
말해주세요, 우리의 노래가 어떤 금빛 꿈을 흔들어 재우게 될지를?
우리가 흘릴 눈물은 어디서 오는 건가요?
오늘 아침, 햇살이 당신의 눈꺼풀을 비추었을 때,
어떤 사색에 잠긴 천사가 당신의 머리맡에 몸을 숙인 채,
가벼운 옷자락 속에서 라일락을 흔들며,
작은 목소리로 그가 꿈꾸던 사랑을 이야기하지 않던가요?
희망을 노래할까요, 슬픔 아니면 기쁨을?
냉혹한 군대를 피로 물들일까요?
비단 사다리에 연인을 매달아놓을까요?
준마가 거품을 내뿜으며 달리도록 할까요?
성스러운 집의 무수히 많은 램프에서
어떤 손이 밤낮으로
생명과 영원한 사랑의 성유(聖油)에 불을 붙이는지 말할까요?
타르퀴니우스에게 외칠까, “시간이 되었어요, 여기 어두움이 있어요!”라고.
진주를 따러 바다 속으로 내려갈까요?
쓰디쓴 흑단나무까지 염소를 데려갈까요?
우울한 하늘을 보여줄까요?
가파른 산 위까지 사냥꾼을 따라갈까요?
암사슴은 사냥꾼을 봅니다. 사슴은 울고, 애원합니다.
그의 숲은 사슴을 기다립니다. 갓 난 새끼들도 있습니다.
사냥꾼은 몸을 굽혀 사슴의 목을 베고
땀에 젖은 사냥개에게 아직도 뛰고 있는 사슴의 심장을 던집니다.
하인을 데리고 미사에 가면서
어머니의 옆에서 멍한 눈길로
기도를 잊은 입술을 반쯤 벌린 채 
뺨을 붉히고 있는 처녀를 그릴까요?
그녀는 성당 기둥 사이에서 메아리쳐 울리는
용감한 기사가 탄 말발굽 소리를 온몸을 떨면서 듣고 있습니다.
무장을 한 채 전투에 뛰어들라고,
잊힌 영광이 음유 시인들에게 가르쳐준
순박한 로망스를 되살리라고
프랑스의 옛 영웅들에게 이야기할까요?
맥 빠진 엘레지에 흰 옷을 입힐까요?
워털루의 주인공은
영원한 밤의 사자(使者)가 다가와
한 번의 날갯짓으로 쓰러뜨리기 전에
차가운 심장 위로 두 손을 묶기 전에
그의 삶과, 그가 죽게 한 인간의 무리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해줄까요?
굶주림에 지쳐, 깊은 망각 속에서
질투와 무력함으로 떨면서,
천재의 이마에서 희망을 모욕하러
그의 입김이 더럽힌 월계관을 물어뜯으러 오는
창백한 팸플릿 작가의 일곱 번이나 팔린 이름을
거만한 풍자시의 말뚝에 못 박을까요?
비파를 드세요! 비파를 들어! 더 이상은 침묵할 수 없으니.
내 날개는 봄바람에 나를 들어 올립니다.
바람은 나를 실어 가려하고 나는 대지를 떠나려 합니다.
당신의 눈물을! 신이 내 말에 귀 기울이니, 때가 이르렀습니다.

시인

사랑하는 나의 누이, 만일 그대에게 필요한 것이
다정한 입맞춤과 
내 두 눈의 눈물뿐이라면,
기꺼이 주겠소.
그대가 다시 하늘로 올라간대도
우리의 사랑을 기억해주오.
나는 희망도
영광도 행복도
아! 고통조차 노래하지 않으려 하오.
심장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입술은 침묵을 지킨다오.

뮤즈

당신은 마치 내가 가을 바람과도 같이
무덤에 뿌려진 눈물까지 탐닉한다고,
고통이 내겐 한 방울의 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요?
오, 시인이여! 당신에게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바로 나랍니다.
내가 이곳에서 뽑아버리려 했던 풀,
그것이 당신의 게으름입니다. 당신의 고통은 신의 것입니다.
당신의 젊음이 견디고 있는 고뇌가 무엇이든,
검은 천사들이 당신의 가슴 깊숙이 만들어놓은
신성한 상처가 커지도록 내버려두세요.
커다란 고통만큼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시인이여, 그런 고통을 당하기 위해서
당신이 이 세상에서 침묵해야 한다고는 믿지 마세요.
가장 절망한 자들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고,
나는 순전한 흐느낌에서 나온 불멸의 노래들을 알고 있습니다.
긴 여행에 지친 펠리컨이,
저녁 안개 속에서 자신의 갈대밭으로 되돌아올 때,
굶주림에 지친 어린 새끼들이
멀리서 그가 물 위에 쓰러지는 것을 보고 해변을 달려옵니다.
벌써, 먹이를 잡아 나눌 생각에,
새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흉측한 갑상선종 위로 부리를 흔들며 아비에게 달려갑니다.
느린 걸음으로 높은 바위에 이르러, 
늘어진 날개로 새끼들을 감싸 안고,
우울한 낚시꾼인 그는 하늘을 쳐다봅니다.
열린 가슴에서는 피가 줄줄 흐릅니다.
헛되이 그는 바다의 깊이에 대해 숙고해봅니다.
대양은 텅 비어 있고, 해변은 쓸쓸합니다.
먹이로 그는 자신의 심장을 내줍니다.
침울하고 말없이, 바위에 드러누워
자식들에게 아비의 내장을 나누어 주며,
숭고한 사랑 속에서 고통을 가라앉힙니다,
그리고, 흘러내리는 핏빛 젖을 보면서,
쾌감과 애정과 공포에 도취되어
죽음의 향연에서 그는 쇠약해져 비틀거립니다.
하지만 이따금, 숭고한 희생의 도중,
너무나 긴 고통 속에 죽어가는 데 지친
그는 새끼들이 자신을 살려둘까 두려워합니다.
그때 그는 몸을 일으켜, 바람에 날개를 펼치고,
거친 울음소리로 자신의 가슴을 칩니다.
그가 밤중에 너무나도 슬픈 작별 인사를 하여,
바닷새들은 바닷가를 떠나고,
해변에서 지체한 여행자는,
죽음이 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신에게 자신을 맡깁니다.
시인이여, 위대한 시인들은
순간을 즐기는 자들이 즐거워하도록 내버려둡니다.
하지만 그들이 축제에서 내놓는 인간 향연은 대부분
펠리컨의 것과 흡사합니다.
위대한 시인들이 이렇게 어긋난 희망과,
슬픔과 망각과, 사랑과 불행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것은 심장을 부풀리는 음악회가 아닙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칼과도 같습니다.
칼날은 허공에 눈부신 원을 그리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몇 방울의 피가 맺혀 있습니다.

시인

오, 여신이여! 만족을 모르는 유령이여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마시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순간
인간은 모래 위에 아무것도 쓸 수 없다오.
젊은 시절 나의 입술이
새처럼, 끊임없이 노래하던 
시절도 있었다오.
하지만 나는 너무 심한 고통을 겪었고,
내 칠현금에 맞춰 그 고통을 노래하려 한다면,
그중 가장 하찮은 것에라도
칠현금은 갈대처럼 꺾이고 말 것이오.


김미성 옮김
 
사진 Kristina Serv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