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편지, 답장 - 세르게이 예세닌

게시일: Jul 18, 2018 6:36:6 PM

어머니의 편지


이제

뭘 더 생각할 게 있겠는가,

이제 뭘 더 쓸 게 있겠는가?

내 눈 앞

우울한 책상 위에

놓여진

어머니의 편지.

어머니는 이렇게 쓰신다.

“될 수 있으면 말이다, 얘야,

크리스마스 때

우리한테 내려오려무나.

내게는 목도리를 하나 사주고,

아버지께는 바지를 한 벌 사다오.

집에는

부족한 게 너무 많단다.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나도 이젠 늙었고

몸도 영 좋지 않단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대체 네가 왜 이렇게 되었느냐?

그토록 얌전하고,

그토록 순한 아이였는데.

모두들 앞을 다퉈 말하곤 했지.

저 아이 아버지는

얼마나 행복할까!라고.

네게 품었던 우리의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렸구나.

게다가 더 가슴 아프고

쓰라린 것은,

그나마 네가 시로 버는 돈이

꽤 많을 것이라는

허황한 생각을

네 아버지가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얼마를 벌든 간에,

네가 돈을 집에 보낸 적은 한 번도 없지.

네 시가 그토록 서러운 걸 보면

나도

알겠다,

시인들한텐 돈을 잘 안 주나 보다는 걸.

네가 시인이라는 거,

좋지 않은 평판만

얻고 있는 거,

난 정말이지 못마땅하다.

차라리 네가 어릴 적부터

뜰로 쟁기나 몰고 다녔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요즘은 온통 슬픈 일 투성이다.

암흑 속에서 사는 것만 같구나.

말(馬)도 없단다.

네가 집에만 있었더라면,

지금쯤 우리에겐 모든 게 있을 텐데,

네 머리로

동네 읍장인들 안 됐겠느냐.

그랬더라면 더 당당하게 살았을 텐데,

아무한테도 끌려 다니지 않고,

너 역시나

필요 없는 고생은 안했을 텐데,

네 처한테는

실 잣는 일이나 시키고,

너는 아들답게,

우리의 노년을 돌보지 않았겠느냐.”

편지를 구겨 버린 나는

우울해진다.

정말이지 내 이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인가?

그러나 내 모든 생각은

나중에 털어놓으련다.

답장에서

털어놓으련다.



답장

내 늙은 어머니,

사시던 대로 그냥 사세요.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다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요,

하지만

내가 무얼 위해 사는지,

이 세상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

어머니는 눈곱만큼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어머니!

눈보라 속에서 어떻게 잠이 들 수 있지요?

굴뚝에선 웅웅대는 소리가

그렇게 불평하듯 늘어지는데.

몸을 뉘려 하면,

보이는 건 침대가 아니라

좁은 관이고,

꼭 무덤에 들어가는 것만 같을 테지요.

내가 사랑하는

그 봄을

나는 위대한 혁명이라

부르지요!

오직 그 하나만을 위해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거예요.

그 하나만을

기다리며 불러대는 거예요.

그런데 이 가증스러움이란

레닌의 태양으로도

여태 덥혀지지 않는,

우리의 이 차가운 지구 말이에요!

바로 그래서

시인의 아픈 가슴을 안고

추태를 부리기로 나선 거예요.

술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면서 말이에요.

돈에 대해서는 잊어버리세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시라고요.

죽음이라니요?

왜 그러세요?

내가 뭐 외양간에서 끌어내야하는

소는 아니잖아요,

말이나

당나귀도 아니고 말이에요.

때가 오면,

지구에

불을 지펴야 할 때가 오면,

내 발로 나가겠어요,

그리고는, 돌아오는 길에

목도리를 사드리지요,

아버지께는

말씀하신 바지도 사드리고요.


사진 Arsl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