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네트 - 윌리엄 셰익스피어

게시일: Jul 17, 2018 11:8:5 PM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고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 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더 절으리라.

그대의 말에 구태여 변명 아니하며.

그대의 뜻이라면

지금까지 그대와의 모든 관계를 청산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가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아는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대를 위해서

나는 나 자신과 대적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나 또한 사랑할 수 없으므로.

운명과 세인의 눈에 천시되어

나는 혼자 버림받은 신세를 슬퍼하고

소용없는 울음으로 귀머거리 하늘을 괴롭히고

내 몸을 돌아보고 나의 형편을 저주 하도다

희망 많기는 이 사람

용모가 수려하기는 저 사람

친구가 많기는 그 사람 같기를

이 사람의 재주를, 저 사람의 권세를 부러워 하며

내가 가진 것에는 만족을 못 느낄 때

그러나 이런 생각으로 나를 거의 경멸하다가도

문득 그대를 생각하면 나는

첫 새벽 적막한 대지로 부터 날아올라

천국의 문전에서 노래 부르는 종달새

그대의 사랑을 생각하면 곧 부귀에 넘쳐

내 운명 제왕과도 바꾸려 아니 하노라

내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 수 있으리까?

그대가 훨씬 사랑스럽고 온화한 것을

거친 바람이 오월의 향긋한 꽃봉오리를 흔들고

우리에게 허락된 여름은 너무 짧구려.

때론 하늘의 눈이 뜨겁도록 반짝이고

그 황금빛 안색이 흐려지는 것도 자주 있는 일

우연 또는 자연의 무상한 이치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때때로 시들지만

그러나 그대의 영원한 이름만은 시들지 않으리

그대가 지닌 아름다움도 잃지 않으리

죽음조차 그대가 자신의 그림자 속에서 헤매인다고 자랑치 못하리

불멸의 시구 속에서 그대는 시간과 하나가 되는도다

인간이 숨을 쉬고 눈이 있어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니

내 사랑이 참사랑을 맹세하면

거짓말을 알면서도 믿느니

세상의 거짓에 익숙하지 않은

풋내기 청년으로 생각하길 바라기 때문

내 나이 한창 때를 지난 줄은 그녀도 알건만

나를 젊게 보도록 헛되이 말을 믿어

둘 다 뻔한 진실을 감추고 있네

정절하지 않다고 왜 그녀는 고백하지 않는가?

늙었다고 나는 왜 말하지 않는가?

이 사랑의 습관은 짐짓 믿는 체하는 것이며

사랑의 연륜은 나이를 따지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그녀와 눕고 그녀는 나와 누워

결점 많은 우리는 거짓말에 만족하나니

파도가 자갈 덮인 해변으로 나아가듯

시간이 끝을 향해 달리며

모든 것이 앞서간 것과 자리를 바꾸듯

모두가 연달아 앞으로 나아간다.

천계에 태어났던 갓 난 아이는

정년으로 기어가서 정상으로 이르지만

불운이 그의 영광을 방해하며

시간은 주었던 재능을 이제 부순다.

시간은 만발한 청춘의 꽃을 파괴하며

미인의 이마에 주름살을 파고

자연의 놀라운 진리를 삼켜

아무것도 시간의 낫에 견대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의 잔인한 손에도 불고하고 그대의 가치를 칭찬하는

내 시는 미래의 시간에도 남을 것이니

나의 시는 다른 시인의 시와 다르도다.

그들은 분칠한 미인에게서 시흥을 일으키고

저 하늘까지도 그 여인을 장식하는 데 사용하려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열거하여,

오만하게도 그의 연인과

태양, 달, 지구 그리고 바다의 주옥들과

떠는 4월의 이른 꽃과 우주의 넓은 하늘의

모든 진귀한 물건과 견주나니,

이 시랑에 진실한 나는 진실하게 쓰리라.

그러므로 나의 애인은

하늘의 저 별들같이 광채는 없어도

어느 어머니의 아들만큼 아름다운 것을 믿으라.

허튼소리 좋아하는 자들은 함부로 떠벌리라고 하라.

내것은 팔 것이 아니니 과찬은 아니 하리라.

거울은 그대의 아름다움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여줄 것이며

해시계는 그대의 귀중한 시간이 허비되는 것을 말해줄 것입니다.

백지는 그대 마음의 영상을 간직하고 있음을

그대는 이 책에서 경험할 것입니다.

거울의 숨김없이 보여줄 주름살은

입 벌린 무덤의 기억을 그대에게 줄 것입니다.

해시계의 살근거리는 그림자에서

그대는 영원으로 향한 시간의 도둑같은 전진을 알 것입니다.

그대의 기억 속에 간직될 수 없는 것을 보시고

이 공백의 지면에 맡기시면 그대는

그대의 머릿 속에서 태어나 잘 돌보아진 아기가

그대의 마음에 새롭게 익숙해진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그대가 자주 들여다 보는대로

그대에게 이로울 것이며

그대의 책을 풍요하게 할 것입니다.

게걸스런 시간아, 사자의 발톱을 무디게 갈고

대지가 그 귀여운 후손을 삼키게 하고

사나운 호랑이의 턱에서 날카로운 이빨을 뽑아라.

오래 산 피닉스를 불태우고

급히 가면서 기쁘고 슬픈 계절도 만들라.

넓은 세상과 퇴색하는 모든 감미로운 것에

걸음이 잽싼 시간은 무엇이든지 다 하라.

그러나 꼭 하나 흉악무도한 범죄를 금하노니

아, 내 사랑의 아름다운 이마에 너의 시간을 새기지 말며,

너의 기괴한 펜으로 줄을 긋지 마라.

후세에 미의 전형을 보이기 위해 너의 길에서 벗어나게 하라

하지만 너 늙은 시간아, 너의 최악을 다 하라.

너의 몹쓸 짓에도 불구하고

내 사랑은 나의 시 속에서 영원히 젊어 있으리니.

마흔 번의 겨울이 그대 이마를 포위하고

그대 아름다운 들판에 깊은 참호를 파면

지금 뭇 시선이 쏠리는 그대 청춘의 화려한 차림새는

별볼일 없는 해진 옷자락이 되리라

그 때에, 그대의 아름다움은 어디 갔느냐 물을 때,

그대 자신의 푹 꺼진 눈자위에 들어 있다 대답하면,

그것 혼자서 모두 삼킨 망신, 혼자 잘났던 낭비의 수치리라.

그대 아름다움을 잘 투자하여, 이렇게 대답한다면

얼마나 칭찬받겠는가? 이 잘 생긴 내 아이는

내 인생을 결산하고 내가 오래 산 이유가 될 것이오

아이의 아름다움이 상속에 의하여 그대의 것임을 증명하리라!

이는 그대가 늙었을 때 새로 지음을 받는 일이며

그대 몸 속의 피가 싸늘할 때 다시 더워지는 것이다.

내 정열의 주인공 그대는

자연이 스스로 그린 여자의 고운 얼굴을 가졌노니,

여성의 부드러운 마음을 가졌으되

거짓된 여자 같은 변덕에 물들지 않고

여성의 눈보다 더욱 빛나되 거짓되게 눈을 돌리지 않느니.

보는 것마다 아름답게 되고

건장한 모습으로 모든 색을 통괄하고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여성들의 영혼을 황홀케 한다.

그대는 먼저 여자로 창조되었으되

자연의 여신이 스스로 만든 그대에게 매혹되어

부가물을 달아 그대를 나에게서 빼앗았으니,

하나를 더 부가하는 것은 나에게 의미없는 짓.

그대 나에게서 늦가을을 보리라,

누런 잎이 몇 잎 또는 하나도 없이

삭풍에 떠는 나뭇가지

고운 새들이 노래하던 이 폐허가 된 성가대석을

나에게서 그대 석양이 서천에

이미 넘어간 그런 황혼을 보리라,

모든 것을 안식 속에 담을 제2의 죽음,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그대는 나에게서 이런 불빛을 보리라

청춘이 탄 재, 임종의 침대 위에

불을 붙게 한 연료에 소진되어

꺼져야만 할 불빛을

그대 이것을 보면 안타까워져,

오래지 않아 두고 갈 것을 더욱 더 사랑하리라


사진 Brandon Christopher War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