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 자크 프레베르

게시일: Jul 18, 2018 6:53:1 AM

이 사랑은

이토록 사납고

이토록 연약하고

이토록 부드럽고

이토록 절망한

이 사랑은

대낮같이 아름답고

날씨처럼 나쁜 사랑은

날씨가 나쁠 때

이토록 진실한 이 사랑은

이토록 아름다운 이 사랑은

이토록 행복하고

이토록 즐겁고

또 이토록 덧없어

어둠 속 어린애처럼 두려움에 떨지만

한밤에도 태연한 어른처럼 자신 있는

이 사랑은

다른 이들을 겁나게 하던

그들의 입을 열게 하던

그들을 질리게 하던 이 사랑은

우리가 그네들을 못 지키고 있었기에

염탐 당한 이 사랑은

우리가 그를 추격하고 해(害)하고 짓밟고 죽이고

부정하고 잊어버렸기 때문에

쫓기고 상처받고 짓밟히고 살해되고

부정되고 잊힌 이 사랑은

아직 이토록 생생하고

이토록 볕에 쪼인

송두리째 이 사랑은

이것은 너의 것

이것은 나의 것

언제나 언제나 새로웠던 그것

한 번도 변함없던 사랑

초목같이 진정하고

새처럼 애처롭고

여름처럼 따뜻하고 생명에 차

우리는 둘이 다

가고 올 수 있으며

우리는 잊을 수 있고

우리는 다시 잠들 수 있고

잠 깨고 고통 받고 늙을 수 있고

다시 잠들고

죽음을 꿈꾸고

정신 들고 미소 짓고 웃음 터뜨리고

다시 젊어질 수 있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여기 고스란히

멍텅구리처럼 고집 세고

욕망처럼 피 끓고

기억처럼 잔인하고

회한처럼 어리석고

대리석처럼 차디차고

대낮처럼 아름답고

어린애처럼 연약하여

웃음 지으며 우리를 바라본다

아무 말 없이도 우리에게 말한다

나는 몸을 떨며 귀를 기울인다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외친다

나를 위해 외친다

네게 애원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서로 사랑하는 모두를 위해

서로 사랑하였던 모두를 위해

그래 나는 외친다

너를 위해 나를 위해

내가 모르는 다른 모두를 위해

거기 있거라

지금 있는 거기 있거라

옛날에 있던 그 자리에

거기 있거라

움직이지 마라

떠나버리지 마라

사랑받은 우리는

너를 잊어버렸지만

너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우리에겐 땅위에 오직 너뿐

우리들 차디차게 변하도록 버리지 마라

항상 더욱더 먼 곳에서도

그리고 그 어디에서든

우리에게 생명의 기별을 다오

훨씬 더 훗날 어느 숲 기슭에서

기억의 숲속에서

문득 솟아나거라

우리에게 손 내밀고

우리를 구원하여라.


김화영 옮김

사진 dontshoot.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