놋쇠의 성 이야기 - 천일야화

게시일: Jul 18, 2018 9:55:45 PM

여기에 그들이 보여 주는

온갖 위업의 자취는

경고를 내리는 것이로다,

무릇 사람이란 궁극에는

같은 길을 걸어감을.

영원히 힘 사라져버린

겨레의 소식 듣고자

오, 그대 여기 멈췄도다.

그러면 어서 주저 말고

이 성문을 지나

티끌 속에 묻히어버린

위대한 자의 소식을

그 폐허에서 찾아보라,

죽음의 신에 의해 멸망되고

힘도 맥없이 꺾이어서

자랑하던 그 온갖 재물들도

티끌 속에 잃었노라

정녕 그들은 잠시 쉬다

무거운 짐만 벗어놓고

멀리 가버린 상태처럼.

애달프다, 이 둥근 지붕 아래

늙어서 머무르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간 사람들

그 수 얼마나 많았던가.

보라 무상의 상태들을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은

이렇듯 귀한 사람을

쏘아서 쓰러뜨린 화살로

오, 얼마나 세상사람 쏘았느뇨.

생전에, 그들은 함께 얼려

모은 물건을 나누다가

기쁨을 뒤에 남겨 놓고

「사신(死神)」을 따라 멸망의 문으로

무거운 발걸음 옮겼도다

대체 무엇인고, 기쁨이란

대체 무엇인고, 먹고 마신 것이

이제는 티끌에 묻혀서

구더기의 밥이 되었으니

그 애통함이여, 덧없음이여.

오, 싸움터에 나가기 몇 번이던고

내가 베어 죽인 자 그 얼마던고

하늘의 은총 입기 그 몇 번이며

멸망을 목격하기 또한 몇 번이던고

내가 먹은 것은 그 얼마이며

마신 것은 또한 얼마였던고

가희의 절묘한 가락에

황홀히 취한 것은 몇 번이던고.

명령을 내리고 금지도 하고

성을 에워싸고 그곳 성주를

찾은 일이 또한 몇 번이던고.

수녀원에 사는 처녀들이

포로의 몸이 되었을 때

성안 깊숙이 숨은 것을

그 신분도 모르고 미소 지으며

마침 좋은 것 보았노라고

행여 놓칠세라 붙잡아다가

무참히도 죄를 지었도다.

그러다가 결국 알았노라

손에 넣어봐야 이득 없고

오직 공허할 뿐임을.

이르노니 남자여, 한시바삐

그대의 벌을 벌로 알라

죽음의 잔 마시기 전에

슬기로운 마음 간직하고

먼저 운명의 잔 마셔라,

까닭은, 그대의 머리 위에

티끌이 뿌려지면, 그 목숨은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므로.

내 귀에 남겨진 것은

영혼의 고귀함이 아니라

만인에게 마련된

심판과 신의 뜻에 의한다.

내 일찍이 복이 많아

자랑스럽게 살며 여러 시간을

싸우는 들사자처럼

보물 지키는데 소비했다.

쉴 사이 없이 욕심에 젖어

뺏고 탐하고 긁어모아

무서운 지옥의 불길에서

내 영혼 구할 생각 없이

겨자 한 알도 남에게 안 주었다.

그러므로 마침내 어느날

만물의 창조주이자

정의, 권력의 임금님이

엄한 심판을 내리셔서

화살인양 나를 쓰러뜨렸다.

이처럼 죽음이 정해졌을진대,

뜬세상에서 거드름 피던 나의

약은 꾀와 속임수로도

이 목숨 붙들 수 없고

둘러싼 군병의 방패도

나갈 길 막지 못했으며

다정한 벗도 이웃도

이 함정에서 나 건지지 못했다.

따지기도 하고 위로도 받고

기뻐도 하고 원망도 하다가

삶을 떠난 죽음의 나그네 길이

하도 험난해 지쳐버린 이 몸.

오, 사람들아 명심할지니

황금에다 황금을 보태어

돈자루가 부풀어 올라본들

허무하여라 밤이 다 오기 전에

남김없이 그대를 떠나간다.

낙타는 그대의 시체 나르고

낙타몰이꾼 무덤 파는 자들은

먼동이 다 트기도 전에

그대 후사를 데리고 올 것이며

「심판의 날」엔 그대 홀로이

죄업과 공포에 휩싸인 채

「하느님」 앞에 황공하게 서리라.

현세의 온갖 유혹 피하고

집사람에게, 이웃사람들에게

얼마나 은혜를 베풀었던가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라.

때는 흘러서 화살처럼

세상은 태양 아래 옛것이 되어

이미 목숨 없는 내 이름을

그대가 알고 싶어 한다면

샤다드의 아들 쿠슈이니라.

내 만인을 잘 다스려서

영토 온 구석을 지배했노라,

완미(頑迷)하고 무쇠 같은 무리조차

모두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샨의 끝에서 카이로를 지나

아라비아의 땅에 이르기까지

허다한 왕을 정복하여

영광 아래 군림했으며

무리들은 모두 앞을 다투어

나의 노여움을 겁냈노라.

모든 종족과 군대들이

내 장중에 들어 있어서

적도 이편도 한결같이

온 세상이 내 앞에서 떨었도다.

내 한 번 말에 올라

때로 병마를 사열하면

기마의 무리가 백만 기.

불운을 물리치고 차지한

갖은 금은재보는

아무도 헤아릴 수 없을 만한

형용도 못할 거부였으니

내, 이 부를 남김없이

내던지고 내 목숨 사려했다면

죽음도 잠시는 면했으리라.

하지만 알라는 그 뜻을

추호도 굽히지 아니하여

내 기어이 형제들과

떨어져서 홀로 살아가며

고독을 되씹는 몸 되었도다.

게다가 인간을 떼어 놓는 「죽음」은

나의 운명을 뒤바꾸어

호화찬란한 궁전에서

침침한 움막으로 옮겼노라.

그리하여 나는 볼모처럼

외롭고 쓸쓸한 신세 되어

죄 까닭에 이루지 못한

내 활동의 모든 것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도다.

그러니 명심할지어라,

이 세상 벼랑길 헤매면서

허허로이 걸어간 인간들아

덧없이 돌고 도는 운명을

항상 변하는 시기(時機)를.


<천일야화, 놋쇠의 성 이야기> 중

버튼 판/ 오정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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