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고별 - 루쉰
게시일: Jul 18, 2018 10:5:38 PM
사람이 잠에 빠져 시간조차 잊어버렸을 떄 그림자가 작별인사를 하러 와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천국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지옥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내가 싫어하는 것이 아이들 미래의 황금세계에 있다면 나는 가기 싫다.
그러나 내가 싫어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다.
벗이여, 나는 그대를 따라가기 싫다. 머무르고 싶지도 않다.
싫다.
아아, 아아, 싫다. 허공을 헤메는 편이 차라리 낫다.
나는 한갓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대와 헤어져 어둠 속에 가라앉을까 한다. 그러면 어둠은 나를 삼켜 버릴 것이다. 그러면 밝음도 나를 지워 버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명암 사이를 헤메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어둠 속에 빠지는 편이 낫다.
그러나 나는 결국 명암 사이를 헤멘다. 황혼인지 여명인지를 나는 모른다.
나는 잠시 회색빛 손을 들어 짐짓 술 마시는 듯하다. 나는 시간도 모르는 시간 속을 오직 홀로 멀리 가리라.
아아, 아아, 만약 황혼이라면, 어두운 밤은 물론 나를 그속에 잠기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대낮에 지워지고 말리라. 만약 지금이 여명이라면.
그대여,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어둠을 향해 허공 속을 방황하리라.
그대는 아직도 나의 선물을 원하는가. 내가 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으리요. 어쩔 수 없이 역시 어둠과 허공 뿐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어둠이 자네의 빛으로 사라질 수 있기를.
오직 바라건대 허공만은 자네의 마음을 채우지 말기를.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벗이여 ㅡ .
나는 홀로 멀리 가리라. 그대도 없고 다른 그림자도 없는 어둠 속으로.
나 홀로 어둠 속에 잠기면 세계는 완전히 내 것이 되리라.
1924년 9월 24일
그림 <흐린 밤 (Nuit grise,dit à tort Avant l'orage)>, 클라벨